[경기중앙신문]

▲고일광 변호사

퇴근 무렵 친한 지인으로부터 카톡으로 부고알림이 왔다. 그 지인의 아들이 갑자기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멍하면서 몇 분 동안 온 신경이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그는 내가 변호사로 개업하던 첫해 첫 의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건설업 쪽으로 기술을 익혀 꿈을 펼쳐 보고자 험한 건설현장으로 근무를 자청하여 유력 건설회사의 현장에 말단으로 투입되었다. 초짜라 며칠 일하는 게 서툴렀던지 유난히 해당 팀장이 그를 못 마땅해했다. 한 주 정도 거친 현장 일에 팀장에게 갑질까지 당한 후 어느 날 저녁 그의 입사환영 회식이 열렸다. 회식장소 1차, 2차까지 장소 섭외를 말단 신입이 해야 했기에 그는 회식 중간에야 비로소 밥술을 뜨게 되었다. 자신에 대한 환영회식날 조차 푸대접을 받은 그는 몇 숟가락도 못뜬 채 상사들이 주는 폭탄주를 연거푸 들이켜야 했다.

2차 노래방으로 가기 직전 택시를 타러 나오는 과정에서 평소 그를 못마땅히 여겨 왔던 팀장이 하필 화장실 갔다 오는 길에 비틀거리는 그와 어깨가 크게 부딪혀 버렸다. 한 주 내내 받아왔던 스트레스에 술기운까지 올랐던 그는 그만 팀장에게 욕설을 하고 말았다. 일순간 팀장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독이 올라왔다. 팀장은 계단 밑에서 그를 심하게 두들겨 팬 후 널부러져 있는 그의 허리춤을 한 손으로 들고 올려서는 1층 바닥으로 올라와 그를 내동댕이쳐 버리고 니킥에 워커발로 배를 여러 차례 무자비하게 내리쳐 밟았다.

눈앞에서 직원들간에 피투성이가 낭자한 폭행 상황이 벌어지자 회식을 주재했던 현장소장은 그의 동료들에게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는 대신 현장 숙소에 데리고 가도록 했다. 그날 밤 동안 내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던 그는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다. 곧바로 장장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진행되었다. 아침에 청천벽력같은 아들의 대수술 소식을 들은 부모는 혼비백산하여 시골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그날따라 유난히 많이 막히던 고속도로 내내 손을 맞잡고 울면서 올라왔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얘기를 전해준 그의 아버지는 나와는 너무나 막역한 사이였다. 하필이면 변호사 개업을 하던 첫날, 나를 찾아와서 회사에게 책임을 물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병원에 도착한 부모에게 회사 책임자는 교통사고라고 둘러댔다. 현장 숙소에 있던 그의 피묻은 옷가지들도 모두 없애버렸다. 회식현장에서 사고가 났는데 아무도 그 원인을 말해 주지 않았다. 촉이 발동한 그의 아버지는 현장으로 달려가 CCTV가 있음을 알고 회사에게 경고를 했다. 그제서야 회사는 이틀이 지나 팀장이 한 짓이라는 걸 고백했다. 사경을 헤매던 아들은 하루가 지나서야 의식을 되찾았다. 한 시간만 늦었어도 못 살렸을 거라고 담당의사가 부모에게 얘기했을 정도였다.

마치 내 동생이 당한 일처럼 열심히 소송준비를 하고 2년간 재판을 했다. 허망하게 1심에서 패소했다. 직원들 둘 간의 사적인 싸움일 뿐 회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판결이었다. 2년간 내내 끊어진 창자로 밥도 제대로 못먹으면서 기력을 회복해 오던 그는 소송이 패소한 순간부터 심한 트라우마를 겪기 시작했다. 피말리는 2심 재판을 또다시 2년간 진행하는 동안 내내 그는 변호사인 내게 죽을 만큼 괴롭다는 호소를 여러 차례 해 왔다. 며칠씩 집을 나간 채 술에 의지하여 헤매다 돌아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나님이 도우셨을까. 2심 재판에서 1심 재판을 뒤집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대법원에서도 우리 손을 들어 줬다. 부모는 울면서 내 손을 맞잡고 좋아했고, 그 역시 얼굴이 밝아지고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결혼도 하게 되었다. 회사는 즉시 피해보상을 해 주었다.

이후 나는 인생선배로서 매일 아침 그에게 성경말씀 구절과 힘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열심히 살아보겠노라,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보겠노라 다짐하는 메시지를 매일 나에게 답장으로 보내 주었다.

하지만 폭행 당시부터 받았던 오랜 기간의 트라우마로 며칠씩 폭음하는 그의 습관은 병적으로 도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기간이 점점 많아졌다. 요 며칠 그에게서 답장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 가끔 며칠씩 술 마시며 괴로워하다 다시 정상생활로 돌아왔던 경험들이 많아서 이번에도 그냥 또 돌아오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만신창이가 된 내장기관들이 그의 폭음을 견디지 못하고, 그는 그대로 잠들어 버렸던 것이다.

최근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연예인이 여론의 공개 망신과 경찰 수사의 무게를 못이기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전에도 수사를 받다가 그 무게를 못이기고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많았다. 부자건 가난한 자건,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재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신의 삶과 바꿔 버린 안타까운 사연들은 너무나 많다. 찾으려면 내 친구나 지인들 중에도 떠오른다.

이 재판이 그에게는 삶 자체의 무게였구나. 빈소에 도착하자마자 부모와 졸지에 미망인이 된 아내는 내 손을 붙잡고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술 마시고 신세한탄하는 전화를 밤중에 할 때 내 시간 희생시키고 좀더 자주 전화를 받아줄 걸, 하는 못난 후회가 들었다.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그와 내가 매일 주고받은 메시지를 유족들에게 보여주면서 말씀드렸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살고 싶다’, ‘가족들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 ‘이겨내겠다’ 라고 결의를 다졌습니다. 그는 살려는 희망을 놓치 않았습니다. 멋진 아들이, 멋진 남편이 되겠다고 수없이 외쳤습니다. 쇠약해진 그의 몸이 이제 그 희망과 결의를 담아 내기에 버거웠을 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