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중앙신문]

▲박세호 [수원화성걷기운동본부 회장]

1905년 11월 17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강압적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았다. 이른바 을사늑약이었다. 곧이어 1910년 헌병 경찰제를 통해 조선의 군사권마저 빼앗은 일제는 기나긴 식민통치를 시작했다. 조선인의 안위를 일본인이 지킨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될 일인가. 결국 조선은 극심한 수탈을 감내해야 했다.

일제에서 벗어나 광복을 수복한 지 78여 년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안위를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 지키고 있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도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경찰의 빈 공간을 채워주기 위해 민간의 자본으로 설립된 몇몇 보안회사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기업으로 자리한 세콤은 그 모체가 일본이다. 특히 전범기업이 미쓰비시그룹이 국내에 진출해 에스원을 세우고 운영 중에 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사 2명만 한국인이고 5명은 일본인이다.

미쓰비시 기업은 일제의 철저한 비호 아래 성장한 기업으로 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철강과 정유, 비행기 생산, 화학 등 군수품을 취급했다. 최근까지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과 관련해 논란이 된 군함도의 실제 소유주였다. 미쓰비시는 군함도에 광산을 개발하면서 수많은 조선인을 강제로 노역시킨 전범기업이다. 그러한 미쓰비시가 우리나라 곳곳에서 소위 안보를 책임지며 돈을 벌어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여타의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문화재, 공공 기관 보안까지 잠식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천년 문화재를 지키는 기업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을 약탈한 일제 전범기업이라니. 조선의 사법, 군사권을 빼앗은 일제를 대표하던 기업에게 우리의 관공서 보안을 맡기고 있는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수원화성만 해도 화재감시 등을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설치한 감시망을 에스원에 맡기고 있다. 일제는 조선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정조가 머물렀던 행궁에 병원과 경찰서를 세웠다. 최근에서야 많은 비용을 들여 다시 행궁을 재건하고 있는데, 그 보안을 미쓰비시 자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인가? 국내 자본으로 설립한 KT에서 운영 중인 텔레캅, SK캡스 등 순수 국내 자본으로 운영 중인 회사도 엄연히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 좋은 서비스, 낮은 가격을 선택할 권리는 소비자에게 있다. 하지만 보안회사라는, 일종의 사적인 안보를 책임지는 분야의 업무를 굳이 전범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는 자존심과 국격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국가 기관과 우리의 오랜 정신을 담은 문화유산의 안전을 일제의 망령이 담겨 있는 기업에게 의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일본에 대한 감정이 고조되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일었다. 당시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해 우파 정치인들이 “한국은 한 번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성공한 적이 없다”며 공공연히 한국의 민족성을 운운한 바 있다. 또 전범기업에 대한 재판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위안부와 강제징용피해자의 아픔을 그들은 돌아보지도 반성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영향으로 일본의 시장이 위축될까 하는 걱정만 앞선 민족이다.

아직도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극우세력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동도 서슴치 않고 있다. 그런 배경에는 극우 정치인을 지원하고, 극우단체를 지지하는 전범기업들이 자리하고 있다. 적어도 국가 기관만은 보안회사를 선택할 때도 한번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118년 전 이즈음 발생한 을사조약의 치욕을 생각하며, 에스원이 지키고 있는 수원 화성을 거닐면서 떠올리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