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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은 이제 그만
2023년 09월 22일 (금) 01:20:34 김연호 수원시노사정위원회 사무국장 webmaster@ggjap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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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김연호 수원시노사정위원회 사무국장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1위를 차지한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 스타디움 시상대에 올라 일장기가 올라갈 때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 장면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손기정은 ‘두 번 다시는 일장기 아래서 뛰지 않으리라’라고 결심했고 그때 느꼈던 참담함과 쓰라림을 조선 동포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 이후 손기정은 한국 스포츠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고, ‘손기정 이미지’는 국가주의를 내세운 한국 스포츠의 역사적 배경이자 애국적 심벌로 각인되었다.

그런데, 일본 제국주의 시기 식민지 청년의 상징이었던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올림픽의 영광과 굴욕을 뛰어넘어 스포츠를 통한 평화운동에 기여하고, 스포츠맨십 자체에 헌신적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손기정은 한국전쟁 중에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 선수에게 축전을 보냈고, 한국전쟁의 참상을 외국에 소개하며 스포츠를 통한 평화운동을 강조하게 된다. 1912년 생인 손기정은 이미 스포츠에서 애국심을 넘어서는 그 이상을 추구했던 인물로 영화와 평전을 통해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스포츠가 세계 평화와 정치적 화합의 장이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정치에 오염되고 이용당해 왔다. 스포츠에 경제논리가 개입되면서 지나친 스포츠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고, 국가 간 힘의 논리나 민족 감정까지 악용하면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제경기도 종종 볼 수 있다.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서도 냉전시대에 미국-소련 간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연이어 열린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의 우방국들만 참여하는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말았다. 소련을 포함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올림픽이나 스포츠에 정치개입 현상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스포츠에 정치가 개입하는 사례는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과거 체제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이념논쟁이 극심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스포츠에 정치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위기나 내부 갈등을 희석시키는 데는 스포츠가 유용한 통치수단이었다. 1980년 때까지 남북한 국제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마치 한국전쟁의 연장전을 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더 나아가 ‘손기정 신드롬’이 강하게 작용한 한일 간 스포츠 경기는 종목을 불문하고 우리나라 선수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고 국민들은 이념과 정파를 떠나 한마음으로 한일전에서의 승리를 응원했다. 한일전 승리에서 공을 세운 선수는 국민의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실수를 한 선수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취급을 받았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경우가 있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거나 세계 챔피언에 오른 선수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대통령 각하’에게 모든 공을 돌린다는 인터뷰 내용이었다. 마치 누가 시켜서 한 것처럼 이 모든 영광을 대통령 각하에게 바친다는 의미였다. 당시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였는데도 ‘저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 있다.

이제 시대가 변해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각하를 찾는 경우는 사라졌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이 묻어나고 재치있게 본인한테 도움을 준 분들을 언급한다. 확실히 우리 선수들은 변했는데, 정치권까지 시대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일단 내년 총선에 정치권이 스포츠계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는 것이 필자의 관점 포인트다.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위해 조직 동원 차원에서 스포츠 단체를 활용하거나, 얼굴마담용으로 스포츠 스타를 내세우는 것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수 본인은 하기 싫다는데 인맥을 활용해 억지로 정치에 끌어들여 선수 이미지를 깎아먹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이제 주말부터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시작된다. 스포츠광인 필자는 어린 시절처럼 TV 앞에 앉아 대한민국을 외치며 우리 선수를 응원할 것이다. 한일전이 열리면 다시 흥분하며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응원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필자 자신부터 응원하는 태도를 바꾸고자 한다. 언론에서 주목하는 인기 종목 이외의 선수들한테 더 관심을 갖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인기 여부와 상관없이 묵묵히 자기 분야에서 기량을 닦아온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응원할 것이다. 다른 국가와의 경기에서도 애국심을 덜어내고 스포츠 자체를 즐기고자 한다. 오히려 약소국가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국가의 선수들한테 연대와 지지 의사를 전하며 승패와 상관없이 그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한다. 애국심의 상징인 손기정이 세계 평화를 노래했고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줬음을 기억하자.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화합의 장이 되기를 기원하며, 이제 우리 모두 아시아의 스포츠 축제를 충분히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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