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3.9.30 토
지방선거, 교육감
> 뉴스 > 사회 | 오피니언
     
변호사님, 괘씸죄에 걸리지 않을까요
2023년 09월 04일 (월) 17:28:55 경기중앙신문 webmaster@ggjapp.com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경기중앙신문]

   
▲고일광 변호사

변호사로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변호사님 범죄를 부인하면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한참 형사재판 진행 중이다가도 의뢰인이 종종 겁을 먹으면서 질문을 한다. “이러다가 괘씸죄 걸리지 않을까요?”

사실 필자가 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지인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으면 늘 괘씸죄 같은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답변드렸던 기억이 난다. 형법전에도 없고 어떤 법률교과서에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호사가 된 후 의뢰인과 함께 형사재판을 받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런 걸 두고 일반 국민들이 ‘괘씸죄’라고 생각하겠구나 싶은 경험들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괘씸죄 아닌가 생각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상황은 검사가 기소한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범행을 부인할 때 발생한다. 특히 관련자가 많아 수사과정에서 많은 참고인들이 조사받았을 경우,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게 되면 그 많은 관련자들을 법정에 모두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 물론 이것은 범행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잘못이 아니다. 형사소송법 자체가 그렇다. 유죄에 대한 입증책임은 검사가 부담하고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관련자들의 진술에 동의하지 않게 되면, 이들이 증인으로 나와서 자기 진술이 맞다는 증언을 해 주지 않는 이상 이들의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함부로 죄없는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뜻으로 형사소송법이 위와 같은 원칙을 정한 것인데, 막상 그 많은 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 내려 하면 판사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여러 증인을 신문하는 데에 몇 개월 때로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데다가, 특히 범행과 관련된 피고인이 여럿 함께 기소된 경우에는 증인 한 명 신문하는데도 여러 피고인별로 각자 묻고 싶은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한 명 증인신문하는데 몇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범행을 부인하는 순간 ‘이 증인들 다 부르려면 재판하는 데 1-2년 걸리겠네요’라며 푸념하는 판사의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이러다가 나중에 유죄로 인정되면 형량 세게 나오는 거 아냐, 하는 낭패감과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검사 역시 그런 상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범행을 인정합니다 하면서 자백하는 재판을 하게 되면 그 모든 증인신문절차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사는 이미 수사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올 관련자들을 조사한 적이 있고, 이들의 진술에 기초해서 피고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기소한 사람이다.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순간 마치 피고인을 째려보는 듯한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여러 모로 억울하게 기소되었다고 생각하는 의뢰인이라면 이런 상황이 매우 난감하다. 억울하긴 한데 계속 강하게 범행을 부인하다가 나중에 유죄가 되면 법정구속되는 게 아닌가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이런 낭패감과 불안감을 변호사 앞에 토해내면서 하는 말이 ‘괘씸죄 걸리는 거 아니예요’이다. 특히 성폭력 범죄 같은 경우는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성폭력 범죄 혐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에게 대놓고 성폭력피해자의 사생할 보호나 2차 가해 등의 용어를 외치며 싫은 표정을 내비치는 판사나 검사를 만난다면, 이런 불안감은 증폭되어 거의 극한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20년 판사생활을 하며 그렇지 않다고 답변해 왔지만, 위와 같은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 의뢰인과 형사재판을 함께 다녀 보니, 저런 의미의 ‘괘씸죄 상황’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다만 위 ‘괘씸죄 상황’에서 진짜 ‘괘씸죄’를 적용시키는 판사가 있다면 이는 분명 잘못된 법적용이고 잘못된 재판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가 없음을 법정에서 호소할 권리가 있다. 이는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기본권이다. 그래서 10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고 하는 것 아닌가. 무죄를 강변하는 피고인 앞에서, ‘안 그래도 바쁘고 사건 많은데 증인신문 하느라 1-2년 씩이나 사건처리가 지연되겠다’느니, ‘빤히 범죄를 저질러 놓고 증인으로 불러내어 회유하려 한다’느니 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판사, 검사가 있어서는 안된다. 범행을 일찍부터 자백하고 선처해 달라고 호소하는 피고인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것은 당연히 있어야겠지만, 범행을 부인한다고 형량을 올리는 판사가 있어서도 안된다.

어디까지나 국민으로부터 감방생활까지 시킬 수 있는 형사처벌의 권한을 위임받은 판사와 검사로서는, 혹시라도 무고한 사람을 재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초심으로 매 재판마다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보고 되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요즘 ‘괘씸죄에 걸리지 않을까요’ 묻는 의뢰인들에게 괘씸죄란 건 없다고 답변해 주지 않는다. 다만 ‘그런 일 없게 열심히 변호해 드릴께요’라고 말씀드린다. 괘씸죄 걸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불안해 하는 의뢰인이 계신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우리나라 사법이 선진화되지 못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창피한 현실이다.

판사와 검사의 판단에서, 그리고 변호사와 의뢰인의 마음에서 ‘괘씸죄’가 영원히 추방되기를 소망해 본다. 

경기중앙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 경기중앙신문(http://www.ggjapp.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평택시, 코로나19 동절기 추가 접종
겨울 설경 아름다운 등산로,선자령
취임 4주년 김상곤교육감, 파장유치원
경기도교육청 29일 퇴직교원 550명
실내에서도 쓸 수 있는 그물침대 ‘라
요즘 대한민국은 ‘커피공화국’… 각양
공무원·군인 봉급 평균 3.5% 인상
통일나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화성시, 건축법령 개정 공장증설 규제
KCC, 그린 리모델링사업 본격화
신문사소개 | 기사제보 | 광고문의 | 불편신고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수원시 권광로 55 권선자이이편한세상 109-802 | Tel (031)8002-6117 | Fax (031)225-6807
등록번호 : 경기도 아00301 | 등록년월일 : 2010년 5월 4일 | 발행인, 편집인 : 김승원 | 청소년보호 책임자 : 김승원 | 회장 : 박세호
Copyright 2009 경기중앙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ggjap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