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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호의 세상보기] 언론의 정치 과잉 시대
김연호 노사민정 사무국장
2023년 06월 13일 (화) 10:07:51 김연호 노사민정 사무국장 webmaster@ggjap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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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김연호 노사민정 사무국장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네요.”

노동절인 지난 5월 1일에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뒤 치료 끝에 숨을 거둔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양희동 지대장이 남긴 유서 내용 중 일부이다. 고인은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해왔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는 이유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건설노조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노동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주요 언론에서도 분신 노동자 관련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었다.

그 와중에 ‘이건 또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치적 목적이 의심 시 되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2023년 5월 16일~18일 사이 유력 언론사에서 분신 방조 및 유서 대필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해당 언론사는 고 양회동 지대장이 남긴 유서를 두고 “누군가가 위조했거나 대필했다”라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필적 감정과 같은 기본적인 검증 절차나 반론없이 보도를 했다.

해당 언론사의 계열사인 월간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올리는 것으로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방식으로 유서 대필 의혹 오보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필자는 30여 년 전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 연상되며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 유서 대필 의혹 보도를 통해 노조의 자율성·도덕성에 심각한 내상을 가했다면, 가장 큰 정치적 이득을 본 주체는 과연 누구일까?

1991년 발생한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비유되며 당시 정치권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드레퓌스 사건은 1894년 프랑스 군부가 가짜 필적을 증거로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 대위를 간첩으로 몰아 종신형을 선고했던 사건이다. 그 당시 드레퓌스 대위에게 종신형이 선고되자 작가 에밀 졸라 등 지식인들의 거센 반발과 비난이 이어졌고, 사건 발생 12년 만에 대법원의 판결로 무죄가 확정되었다.

1991년은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 등 반정부 시위가 극에 달했던 시기로 그해 4월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항의로 전민련 사회부장이었던 김기설 씨가 서강대 옥상 건물에서 폭력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검찰에서 김 씨의 동료였던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 씨를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며 구속한 사건이 발생한다. 강 씨는 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 후 출소를 하게 된다. 강기훈 씨는 유죄 확정 판결 후 무려 23년 만에 대법원에서 자살방조 협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고 동료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벗게 된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그 당시에도 조작 의혹이 제기됐지만 강 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 사건은 당시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사회운동세력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고 학생시위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32년 전 사건을 떠오르게 한 이번 분신 방조 및 유서 대필 의혹 보도를 접하면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책임감을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된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 특정 정치 세력을 위한 여론몰이를 통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정치는 정치인과 정당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사도 논설이나 외부 필진의 칼럼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밝히거나 주장할 수도 있고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반대 견해를 표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검증을 통한 팩트 전달이 기본인 ‘기사 보도’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나라 언론의 과도한 정치 개입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치적 사건 관련 오보는 다반사였고, 선거때마다 주요 언론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주요 정당에 언론사 간부가 차출되는 것은 연례 행사가 되었고, 사고가 난 정치인 술자리에 언론인이 동석했다는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권력이 갖고 있는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현재진행형인 언론의 과도한 정치 개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는 현실이 더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번 유서 대필 오보와 같은 보도에 대해 해당 언론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과징금을 물리게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법안을 제안한 국회의원은 언론탄압이라는 프레임으로 언론사의 융단폭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치권에서 퇴출될 것이다. 이제 기사 작성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고 하는데, 그 시대가 오면 정치적 목적을 가진 기사 보도를 통한 언론의 정치 과잉 개입 문제가 해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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