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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심(良心)과 비양심(非良心)
문재익 문학박사·칼럼니스트
2023년 04월 16일 (일) 23:23:15 문재익 문학박사·칼럼니스트 news@newspea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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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문재익 문학박사·칼럼니스트

양심과 비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辨別)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善)과 악(惡)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儀式)’인 ‘도덕적 심판관’이고, 비양심은 ‘양심에 어긋남’을 의미한다. 양심의 유의어에는 도덕심, 도심(道心), 양식(良識)이 있고, 반의어가 비양심이다. 양식의 우리말 동음(同音)으로 한자어가 다른 양심(兩心)은 ‘두 마음’이고, 양심(養心)은 ‘심성을 수양(修養)하거나 그 마음’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하여 보호한다. 사실 거짓말, 도둑질, 뇌물, 청렴, 결백, 고백에 이르기까지는 양심을 빼놓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그리고 신념을 위해 저항할 때도 ‘양심적’이라는 말로 평가를 내린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수많은 사건들을 볼 때 우리 사회는 양심의 부재(不在)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일부의 정치인들이 도(道)를 넘고 있는 것 같다.

영국의 성공회 주교였던 조셉 버틀러는 종교철학과 윤리학에 기여(寄與)한 공로가 혁혁(赫赫)한데 특히 윤리학의 역사상 ‘양심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인물로 인간 본성의 내적(內的)구조를 인간 행위를 촉발(觸發)하는 동기에 세 가지 차원을, 가장 낮은 단계로 정념(情念:감정에 따라 일어나는, 억누르기 어려운 생각), 열정(passions & affections), 다음 단계를 자기애(自己愛)와 이타심(利他心), 그리고 가장 높은 단계를 ‘양심’으로 보았다.

명사(名士)들의 명언(名言)에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얻고 때로는 삶의 좌표(座標)를 설정(設定)할 수 있다. ‘양심은 영혼의 소리요, 정열은 육신의 소리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말이고, ‘인간을 비추는 유일한 등불은 이성이며, 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양심이다.’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말이며, ‘명예는 밖으로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안에 깃든 명예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양심은 개인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지탱하는 마지막 내면의 외침’으로 반드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남의 죄, 양심을 따지기 이전에 내 양심을 먼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 성경 디모데전서에서도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그런데 같은 성경을 믿는 어느 종파에서는 고린도와 에베소서에 ‘정치적 중립(中立)을 지킨다.’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집총(執銃)거부로 우리나라 국민의 4대 의무(국방, 납세, 교육, 근로)중 하나인 국방의무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미명(美名)으로 국방의무를 이행치 않아 오랫동안 사회문제뿐만 아니라 이슈(issue)가 되어 논란이 되어 왔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거나 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사람들은 비양심이라는 말인가?’라는 반론과 의문을 제기해 왔다.

이에 헌재(憲裁)는 명쾌한 답(答)을 다음과 같이 내 놓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실상 당사자의 ‘양심에 따른’ 혹은 ‘양심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를 가리키는 것일 뿐이지, 병역거부가 ‘도덕적이고 정당하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여 병역의무의 이행은 비양심적이 된다거나, 병역을 이행하는 거의 대부분의 병역 의무자들과 병역의무 이행이 국민의 숭고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양심은 우리네 생활 속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경우들이 있다. 그 중 한가지 경우만 들어 보고자 한다. 바로 노년에 부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례이다. 이 경우 대체로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비양심적 언어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체로 두 가지로, 하나는 ‘지금까지 네가 한 것이 뭐냐? 모든 살림 내가 이루었지’라는 말로, 남편의 공(功)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 같은 빈 털털이는 없다. 너처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 없는 사람은 다 돌아봐도 없다.’라는 말로 시댁에서 큰 도움주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怨望)과 한탄(恨歎)의 말이다.

노년에 이르러 어엿한 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남편은 생활전선에서 남들 잘 때 잠 줄여가며, 남 놀 때 놀지 않고 돈 벌어와 아내 손에 모두 쥐어 주고, 아내는 알뜰하게 살림하여 자식들 교육시키고 여우(결혼시킴)살이까지, 그리고 노년에 궁핍하지 않고 부러운 사람 없을 정도로 재산 형성도 해 놓는 것이, 서로의 역할이고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도 남편의 가족들을 위한 생활전선에서의 그간 쌓아온 공(功)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쳐 버리고, 본인 알뜰하게 살림한 것만을 치켜세우고, 또한 시댁에서 큰 도움은 없었어도 소소한 도움으로 초년 결혼생활을 잘 넘겼는데도 본인 친정에서야 말로 단1도 도움이 없었다는 것은 전혀 염두(念頭)에 두지 않는 것, 바로 비양심의 전형(典型)이고, 노년의 이런 경우가 ‘비양심의 가장 처절(凄切)하고도 악질(惡質)적’인 행태(行態)인 것이다.

양심은 나 자신뿐 만 아니라 온 인류가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이다. 양심이란 한 인간이 살아가고 인류가 존재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우리는 양심의 위대함을 실감하면서도 양심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한심스럽고 후회되기도 한다. 안타깝고 답답한 가슴으로 반성을 해 본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양심이라는 현미경으로 지난날의 행적(行蹟)들을 돌아보며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契機)로 삼아, 양심과 비양심 사이의 지각 있는 분별력으로 청정(淸淨)한 내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면, 나아가서 우리 사회가 더욱 양식 있는 밝고 건전(健全)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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