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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와 불의(不義)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2023년 03월 12일 (일) 19:37:01 경기중앙신문 webmaster@ggjap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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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앙신문]

   
▲문재익 문인

정의와 불의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 정의(正義)는 ‘바른 의의(意義),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道理),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를 말하며 유의어에는 공정, 도리 의(義)가 있다. 불의(不義)는 ‘의리, 도의(道義), 정의에 어긋남’으로 유의어에는 부당, 부정, 부정의가 있다. 그런데 ‘정의와 불의’도 따지고 보면 결국은 ‘선(善)과 악(惡)’의 범주(範疇)에 속해 있으며, 양심(良心)은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다.

정의의 한자‘正義’를 풀어 해석하면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며, 영어단어‘justice’는 ‘공정성, 정당성, 재판, 사법’의 의미로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두가 지켜야할 강제하는 규범, 법’이다. 사실 정의는 선(善)도 악(惡)도 아닌, 이 둘을 포함하는 중립적 개념으로 정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법(法)은 누군가에게는 악법(惡法)일 수도 있으며, 법치국가(法治國家)에서는 정의의 마지막 수호자는 법관(法官)이다. 그리고 올바른 사회를 위해, ‘사회정의, 정의구현(正義具現:justice served), 정의사회 구현, 공정사회, 사법정의’ 라는 용어가 쓰인다.

그리스의 서정시인 핀다로스는 ‘정의로운 자의 찬란한 행위는 육신의 고향인 흙속에 묻히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말을 했고,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사람이 서로 해치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의 역할이다.’고 말 했으며, 스파르타의 왕 이게실라우스 2세는 ‘정의는 미덕(美德)의 으뜸이다. 정의의 뒷받침이 없는 용기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며, 만인(萬人)이 모두 다 의롭다면 용기는 필요 없다.’고 말 했고, 오늘날 까지도 널리 말하여지는 ‘악법도 법이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성경에서는 정의보다는 불의에 관한 하나님 말씀에 무게를 두어 여러 구절이 나온다. 불의(injustice, wickedness, sin)는 ‘옳지 않은 일,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난 일로 규정하고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탄압으로 타인에게 심신(心身)의 상처를 안기거나 재산상 손해를 입히는 행위(잠언)’,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기준에서 벗어나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행위, 하나님을 떠난 일체(一切)의 일(로마서, 사도행전, 고린도 전, 후서)’로, 일명 ‘죄(罪)’라는 말로 이해 할 수 있다. 특히 로마서에는 ‘선으로 악한 불의를 이기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범인(凡人)들은 쉽게 이해도 안갈 뿐더러 따르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원불교에서 삼학(三學)이란 정신수양(精神修養), 사리연구(事理硏究:지식을 넘어 지혜까지 성장하는 것), 작업취사(作業取捨:취하고 버림)이며, 부처의 인격에 이르도록 하는 세 가지 길로 대표적 원불교의 수행교리로 삼학을 병진(竝進)해서 삼학의 공덕인 삼대력(三大力:수양, 연구, 취사)을 얻고 보면 ‘자신의 마음을 부처와 같이 사용할 줄 아는 자유인이 되며,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삼학의 세 번째인 ‘작업취사’는 실생활 속에서 ‘정의는 용맹 있게 취하고 불의는 용맹 있게 버리는 공부’로 사회생활에서 어떤 일을 당했을 때 효과적으로 활용(活用)하자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정의와 불의라는 것이 그 말을 주장하거나 부르짖는 사람의 입장이나 이해득실(利害得失)에 따라 좌지우지(左之右之)될 수 있다. 서로 반대편에서 자신만이 정의이고 상대편은 불의라고 주장하고, 설득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진리는 ‘생명존중, 더불어 잘 사는 나라,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이다. 잘 잘못을 따져보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가 거의 반반으로 분열되어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며 개개인 모두가 책임의식을 느껴야하고, 특히 위정자(爲政者)들의 반성과 의식전환을 국민 모두가 염원(念願)하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또한 일부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념적 편향, 그리고 계층 간 대립이 더 이상 극점으로 치닫지 말아야 하겠다는 염원 또한 간절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의와 불의, 다시 말해 선과 악을 저지르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에 대해 격론(激論)을 벌여왔다. 그러나 그 같은 팽팽한 격론에도 변함이 없는 사실이 있다. 인간은 유전자가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이 환경이다. 대체로 선량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선량하고, 악한 집안에서 태어나면 악한 것이다. 환경적 요소라는 것은 가정과 학교교육인데, 교육이란 ‘선과 악을 가려보는 눈을 갖게 하는 것’이지만, 가정교육은 타고난 그 대로, 분위기 자체가 선(善)하고 악(惡)할 테니, 별 큰 의미가 없고, 그렇다면 학교교육인데 조금은 변화 될지 몰라도 큰 차이는 없는 법이다. 한마디로 선한 사람은 불의를 저지르려 해도 결국은 선하게 돌아오고, 악한사람은 정의를 지키고, 실현하려 해도 불의, 악을 선택하고 말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성(本性), 천성(天性)이라는 말이 우리 인간세계에서 회자(膾炙)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회에서 성공과 행복하려면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타고난 선인(善人)인지 ,악인(惡人)인지? 다시 말해 정의로운 사람인지, 불의를 저지를 사람인지? 상대를 의심하고, 시험해 보는 경미(輕微)한 것부터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언행(言行)에 이르기까지 정도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죄악(罪惡)이다. 상급자든, 하급자든, 특히 친구나 배우자의 경우, 결국 종국(終局)에는 내게도 그리하고, 때론 악인은 악행을 동참(同參)하거나 동조(同調)할 것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면 본의(本意)아니게 휩쓸려 내 삶에 낭패(狼狽)를 볼 수도 있다. 사람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생활의 지혜’, 살아가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끝으로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하나는 미국 하버드대 정치철학교수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로, 이 책의 일반적 평(評)은 관념적(觀念的)이고 난해(難解)하다고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정의란 ‘올바른 분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방식은 3가지로 ‘행복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추구’라는 관점에 근간이 되는 철학적 사상을 면밀히 소개하고, 그 철학적 주장이 가진 허(虛)와 실(實)을 논리(論理)의 장(章)으로 올려놓고 다각도로 탐구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하나는 영국 셰필드대학 인류지리학 교수 대니얼 돌링이 쓴 ‘불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사회의 고정관념을 설명하고 있는데, ‘엘리트주의는 효율적이다.’ ‘배제는 필수적이다.’ ‘편견은 자연스럽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절망은 불가피한 것이다.’로, 이 다섯 가지의 고정관념은 거짓이며 불평등을 지속 시키는 기제(機制: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의 작용이나 원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권의 책 모두 딱딱하고 지루하지만 인내하고 읽어 나가다 보면 ‘정의와 불의라는 관점’에서 우리사회의 ‘문제점과 해결책’들이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도출(導出)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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